며칠 전 책방에 들렀다가 우연히 신간 코너에 꽂힌 어린이·청소년 책들을 훑어보게 됐다. 사실 요즘 내 관심사는 메세나폴리스몰에 새로 들어온 브랜드라거나, 근처 맛집 같은 게 대부분이라 어린이 책 코너는 거의 발길이 닿지 않았는데, 이날은 왠지 모르게 손이 갔다. 한참을 넘겨보다가 한 권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주인공이 또래 친구와의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감정을 인식해가는 이야기였는데, 어른인 내가 봐도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 주인공이 친구에게서 ‘넌 항상 그렇지’라는 말을 듣고 상처받는 장면은, 어른이 되어서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 가슴이 찡했다. 나도 어릴 적 친구와의 오해로 며칠 동안 속앓이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내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하고 회피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은 아이들에게 ‘네 감정은 소중하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6월 들어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새 책들이 꽤 많이 출간됐다고 한다. 그중에는 디지털 환경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정체성, 환경 문제에 대한 첫걸음, 다양한 가족 형태를 다룬 책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책은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주인공이 온라인에서의 자기 표현과 현실에서의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 과정을 그렸는데, 알고 보니 작가 본인이 미디어 아티스트로 활동한 경험이 있어 더 현실감 넘친다고 한다. 또 다른 책은 한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가 학교에서 가족 구성원을 그리는 활동을 하며 느끼는 소외감을 다뤘는데, 이 주제는 요즘 점점 더 많은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어른 사회가 복잡해질수록 아이들이 접하는 이야기도 더 다층적이고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인 듯하다.
사실 나는 어릴 적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권해준 『마당을 나온 암탉』을 읽고 한동안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그냥 닭이 슬퍼서 운 건데, 지금 생각해보면 자유와 희생, 모성 같은 무거운 주제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었던 것이다. 요즘 아이들이 읽는 책들은 더 직접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는 경우가 많아졌다. 기후 위기, 난민, 학교 폭력, 성 정체성 같은 이야기들이 그림책 수준에서도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아이들이 너무 빨리 어른의 세계를 알게 되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최근 한 연구에 따르면 초등학교 고학년의 70% 이상이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접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아이들은 뉴스와 SNS를 통해 전쟁, 재난, 정치적 갈등을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책은 그런 정보를 안전하게 소화할 수 있는 도구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내가 본 책 중에는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다룬 작품도 있었는데, 주인공이 직접 편견을 겪고 극복하는 과정이 세심하게 그려져 있었다. 예를 들어 한 장면에서는 주인공이 장애를 가진 친구를 처음 만나 어색해하다가, 함께 놀이터에서 놀면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는 과정이 담겨 있었다. 이런 책이 필요한 어른들도 분명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지인 중에 자신의 아이에게 성소수자 인권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부모가 있었는데, 이런 책이 좋은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추천해주고 싶었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출판 시장 자체가 위축되고 있고, 어린이 책은 특히 학부모의 구매력에 크게 의존한다. 그러다 보니 ‘교육적’이거나 ‘안전한’ 주제의 책이 더 많이 팔리는 구조다. 예를 들어,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학교 폭력이나 성 문제를 다룬 책은 학부모의 항의를 받을까 봐 선뜻 출간하기 어렵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은 책들이 꾸준히 나온다는 건, 그만큼 사회가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작은 출판사들이 SNS를 통해 입소문을 타며 독자층을 넓혀가는 사례도 늘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법과 제도의 중요성도 떠오른다. 아이들의 콘텐츠를 규제하거나 보호하는 법도 중요하지만, 콘텐츠 자체의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하는 것도 필요하다. 예를 들어 청소년이 접하는 유해 매체를 규제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가 지나치게 제한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만약 이런 문제로 전문 자문이 필요하다면 서울마약전문변호사 같은 곳을 참고할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더 열린 논의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특히 어린이 책의 경우, 단순히 ‘유해하다’는 이유로 금지하기보다는 내용을 이해하고 대화할 수 있는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
돌아와서, 그날 책방에서 산 책 중 한 권을 조카에게 선물했다. 표지에 ’10대를 위한 철학 에세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문구가 마음에 들었다. “너의 질문이 세상을 바꾼다.” 어른이 된 우리도 잊고 살았던 바로 그 질문들. 아이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묻고 있다. 우리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답을 찾아갈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어른의 역할이 아닐까. 요즘같이 각박한 세상에, 작은 책 한 권이 주는 위로가 참 소중하게 느껴진다.